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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 기술 독립 탄력···“일본에 역수출도”
기술 자립·공급망 안정화에 초점···시제품 개발·특허 출헌 등 결실
소부장 업체도 움직임 활발···“한때 유행 아닌 장기적 지원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핵심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기술 자립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이 당분간 규제를 풀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소부장 업체들에 대한 꾸준한 지원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민관협력을 통해 기술 자립 지원을 하면서 공급망 안정화와 글로벌 가치 사슬 재편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에 활용하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3종에 대해 우리 기업을 포괄적 수출 허가제에서 제외하는 사실상의 보복조치에 대한 대응이다.
최근 소부장 핵심 기술 개발의 결실이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직후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지원한 25개 품목 중 23개 품목 시제품이 개발됐으며 434건의 특허 출원이 이뤄지는 등 기술 자립의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소부장의 대일 수입 의존도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중 일본 수출규제 3대 품목 중 하나인 불화수소의 대일 의존도는 전년 동기 대비 22.1% 감소했다. 일본도 긴장하고 있다. 닛케이신문은 지난 7일 “한국의 반도체 소재 국산화로 일본 기업이 타격을 입었다”며 “삼성전자가 일본산 부품 활용을 줄여가는 추세”라고 밝혔다.
실제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우리 소부장 기업 상당수는 원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아스플로는 산업용 특수 강관 소재를 제조하는 회사다. 반도체 공정에서 다양한 가스가 사용되는데 그 가스들을 가스 저장소에서 반도체가 생산되는 장비 내부까지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금속 강관을 생산하고 있다.
아스플로 관계자는 “기존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가스를 공급하는 튜브, 파이프, 밸브, 필터 등의 거의 전량을 일본 업체의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수출규제가 여기까지 미치면 반도체 생산 라인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것들을 저희가 국산화하는 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제품을 확보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스플로가 보유한 기술은 원래 일본에서 전략 수입해오던 기술이었는데 2005년 국산화에 성공해 삼성과 하이닉스 등에 약 15년간 납품해왔다. 하지만 하이테크닉 소재는 여전히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왔는데 이걸 국산화하는 개발 프로그램을 세아특수강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며 “삼성, 하이닉스의 요청을 받아 전 품목을 국산화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 삼성이나 하이닉스 등에서 국산화를 하자고 하는 품목이 1.5배 가량 늘었다는 설명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폴더블 휴대전화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불화폴리이미드를 만드는 회사다. 불화폴리이미드는 일본의 수출 규제 3대 품목 중 하나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관계자는 “일본 수출 규제로 일본에서 불화폴리이미드가 들어오질 못하자 혜택을 보는 상황이 됐다”며 “다만, 폴리이미드가 폴더블 휴대전화에만 들어가는데 이 시장이 아직 크게 형성돼 있지 않다보니 엄청난 이익을 보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공개된 상황에서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양산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우리의 폴리이미드 원천기술을 일본이 갖고 있는지는 애매하다.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초극박 소재를 만드는 회사이다. 스마트폰처럼 작은 단위면적에 많은 전기신호가 흐르려면 미세하게 회로를 구현해야 하는데 이때 초극박이 사용된다. 초극박은 전기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패키징 PCB 기판이나 전자제품 기판에 각각 사용된다.
일진머티리얼즈 관계자는 “초극박은 그동안 일본회사가 독점해 왔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임에도 초극박은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며 “그걸 저희가 국내 최초 양산했고 삼성전자에도 승인을 받았다. 2019년부터는 일본에 역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006년 초극박 원천기술을 개발했으나 그간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개발 이후 한동안 수요가 없다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일본에서의 공급이 끊기자 기업들로부터 국산화 요청을 받았다. 이에 이 업체는 기술개발에 들어가 고객사 승인까지 받았지만 일본이 지진 후유증에서 벗어나자 다시 수요가 사라졌다. 그래서 또다시 정체기를 겪다 일본 수출 규제로 다시 고객사 요청이 늘어난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일본 수출규제로 인해 반사이익을 봤지만 인력 관리에 신경쓰고 있다”며 “제조업에서는 인력 유출이 가장 큰 문제다. 인력유출을 막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복지 등을 회사 차원에서 전사적 관리를 하고 있다”며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부장 업체들은 제조업 특성상 인력 관리가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장비시장지원과 관계자는 “현재 소부장 관련 중소기업 재직자만을 위한 재정지원 프로그램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소부장에 국한되지 않는 중소기업 재직자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은 있다. 청년이 신규 채용되면 중소기업에 연간 900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소 중견기업에 자산형성을 지원하기 위해서 3년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는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장비나 반도체 재료를 가지고 반도체 완제품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한다. 이를 통해 세계 5위 제조업 강국을 일궈냈다”며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인데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다보니 일본도 큰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구체적 사례도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이 자체 불화가스를 생산하고 또 일본에서 95% 독점 수입하던 반도체 재료와 장비를 분산해서 수입하기 시작했다”며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와서 공장을 짓고자 시도하고 있다”고 언급, 우리 기업이 반도체 소재 부품에 대해서 자력의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소부장 업체들이 기술 자립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상당수 품목에서는 일본의 기술 독점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3대 품목 중 하나인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지난해 1~10월 대일 수입의존도가 87.5%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4%만 낮아졌다.
정부는 일본 수출 규제 이후 매년 소부장 관련 대책을 발표해 왔다. 포괄적이고 많은 내용이 담겨 있는 가운데서도 추가 대책이 반영될 여지를 뒀다. 산업부 소재부품장비총괄과 관계자는 “기술지원의 경우 처음엔 일본에 초점을 뒀지만 이후 대책에서는 글로벌로 확대해 글로벌 공급망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품목들도 포함시켰다”며 “여기에 환경, 에너지, 소프트웨어 쪽도 확대해서 관리하겠다는 부분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 대책이 한계를 두는 게 아니라 오픈형으로 돼 있기 때문에 기존 대책을 통해서도 정책 확장이 충분히 가능하다. 탄소중립이나 언택트 부분도 기존 대책을 통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며 “추가 대책이 필요할 경우 올해라도 추진이 가능은 하지만 지금은 일단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국내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벤처캐피탈들이 열악하다보니 기업 육성 정책들을 정부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부장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강소기업 입장에서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중요하다. 수출규제가 있기 전에는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국산화를 한다고 해도 관심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부에서도 소부장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한때의 유행으로 넘어가지 않고 안정적으로 투자를 하는 틀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일본보다 잘 사는 것이 일본을 이기는 길이다. 우리가 일본을 이길 수 있는 극일의 방법을 찾아야지 감정적인 대응에 치우치는 것은 우리나라 전체로 봤을 때 좋지 않다”며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이기 보다는 일본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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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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